출31:21-29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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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V21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 종교적 지도자는 백성을 죄에 빠트릴 수 있다. 종교지도자 만의 잘못으로 교회가 부패하는 줄로 알았는데 모세의 관점과 질문은 다르다.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모세는 아론을 일단 믿는다. 아론이 직접 스스로 백성을 부패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임을 믿고 백성의 요구에 따랐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종교지도자들의 부패는 어쩌면 일부 교회 교인들의 영향과 요구와 습성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잘 못된 결정을 한 지도자는 백성 전체를 부패하게 만들어 버린다.

교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서로 서로에게 부패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V24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 ‘내가 이 송아지를 만들었나이다’와 ‘이 송아지가 생겼나이다’는 같은 사실을 표현하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말이지만 큰 차이를 가지는 거짓말이 될 수 있다. 아론은 미묘한 차이를 가지는 교묘한 말로서 자신의 책임을 덮어보려고 노력한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 하나님이 물을 때 한 대답 즉 하와와 뱀을 탓한 것과 같다.

내 책임을 피해보려는 거짓된 행동은 어쩌면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일 수 도 있다. 그러나 그 내면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하나님의 질서 속에 들어가지 않고 뒤집어 보려는 반항이 들어있다. 아! 나의 모든 책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것을 하나님의 질서에의 순종과 회개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V27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있는 백성의 숫자, 즉 아론을 따라 금 송아지를 만들고 숭배를 했던 백성은 전체 백성 중 일부인 삼천 명 정도 였다. 전부가 아니었으나 어쩌면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 중에 오피니언리더였거나, 선도자등 리더그룹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모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금송아지 숭배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를 싫어하고 쉽게 부패하고 쉽게 우상을 숭배하며 목이 곧으며 불순종을 일삼는 민족이었던 가를 알게 만든다. 이는 이 세상 길을 통해 하나님의 본향을 향해 인생행로를 걸어가는 나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얼마나 불 순종하고, 얼마나 쉽게 길을 벗어나며, 얼마나 쉽게 우상을 숭배하는가? 정말 정신을 못차렸는가 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불순종을 저지르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나 자신이다! 목이 곧고, 방자하며, 쉽게 불순종의 길을 걷는 나는 회개하고 죽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QTShare)

롬1:26-32 반역의 세가지 결과- 더러워진 몸, 사회적 관계의 파괴, 시스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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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Rom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Rom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Rom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Rom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Rom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Rom 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v26 이 때문에 : v21-22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기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v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로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픈 인간의 교만과 반역이 스스로를 진보적이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뭔가 멋진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리석게 되어서 몸을 욕되게 스스로 만들고 있다.

반역의 첫 번째 결과는 몸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것인데 바로 내 자신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반영된다.

그 반역의 결과가 vv26-27 성의 왜곡. 성의 상품화(v26)과 동성애(v27).

vv28-31 그 상실한 마음대로 : 하나님이 없는 마음이 바로 ‘상실한 마음’이다. 그러면 그 마음은 끈이 끊어진 연처럼 방향성을 잃고 파괴된 결과를 낳는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 부모거역,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 모두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해당하는 말이다.

반역의 두 번째 결과는 사회적 관계의 파괴이다.

v32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 반역은 집단화하고 시스템화 한다. 자기만 하면 불안하다. 공범을 늘려야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떠오르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을 부추기고 유인함으로써 혼자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집단화하려고 한다. 바벨탑을 쌓은 동기도 흩어짐을 면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동기이다. 모여있으면 뭔가 안전함을 느낀다.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집단화 현상의 대표적인 것이 학문, 국가, 교육시스템 등 인간사회에 있는 대다수의 시스템화 된 모든 것이 반역의 상징이다.

반역의 세 번째 결과는 반역의 집단화와 시스템화이다. (@QTShare)

롬1:1-7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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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Rom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Rom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Rom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Rom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Rom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Rom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v1 예수 그리스도의 종 .., ..로 부르심을 받아, ..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그렇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문장의 구조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종이다. 예수님의 종이거나 부패한 나 자신, 나 자신이라고 믿는 사탄,의 종이거나. 인간의 하인은 천대받는 존재이지만 예수님의 하인은 높임을 받는 존재다. 그러나 나 자신의 종은 나를 붙잡아 매고 끊임없는 갈증과 경쟁심과 욕심과 교만으로 고통받게 만든다

다음은 부름을 받은 존재이다. 그냥 우연히 생긴 존재가 아니다. 이름을 택해서 불렀다. 개인을 부른 것이다. 우리교회교인 전체를 부르거나, 집단으로 부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개인 한사람 한사람을 부르시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을 위하여” 부르신다. 목적이 있으며 다 소용이 있는 존재이다 (v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그리고 부름의 목적이 분명하다. 무엇이건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땅에 나를 보내시고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큰 곳에서 찾지말고 내가 주변에서 내가 하고 있는 소박한 일의 작은 소용 속에서 하나님의 부름의 목적을 찾자. 단순히 복음 전도를 위해 이렇게 찾지말자. 이웃을 위해 이 세상을 위해 무언가 나는 복의 통로가 되고 있는가?

이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는 핵심단어가 바로 ‘택함을 받은 자’이다.

vv2-4 복음이란 무엇인가? 아들에 관해 미리 약속한 소식 즉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복음이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셨고 그러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이시다. 신비롭다. 인간의 육신이면서도 죽음도 이기면서 하나님이라는 모순이 바로 C.S.루이스가 이야기한 유일한 기적이 아닐까? 하나님이 당신이 만든 피조물의 세계로 피조물 자체가 되어 들어오시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육체적 삶과 부활을 경험하시고 우리를 그길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가? 따라가는가?

v7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는 있는 것이지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fact이다 우리의 느낌에 따라 왔다갔다 강해졌다 약해졌다 많아졌다 적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느낌과 상관없이 이미 완성된 은혜, 변치 않는 하나님의 결심의 은혜는 항상 거기 있어왔다. 다만 그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바랄뿐이다. (@QTShare)